개인 공간/세계정세

9.11 테러와 이라크전(下) by 엑스트라1

Good Choi 2011. 12. 8. 20:59

 

 

 

 

4-3. 왜 이라크여야 했는가?

 

slide 1.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다음에 이라크를 침공했는가?

-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연계하여 WMD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 이라크가 WMD를 생산하여 주변국들의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 사담 후세인은 세속주의자로써 근본주의를 배척하는 통치자였다.

그 반면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근본주의 노선의 혁신적인 선두주자 였다.

 

- 사담 후세인의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고 이라크를 해방시키기 위해?

 

-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하지만 보통은 이러한 표면적이 이유 외에

다른 이유들이 진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그에 대해 살펴보면...


 

 

(1)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그렇다면 미국은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을까요?

이에 대해 여러 반대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 2001년 국제유가는 전년도에 비해 큰폭으로 하락했고, 9.11 테러 이후엔

전년도의 거의 절반 수준까지도 폭락했었다. 고로 굳이 미국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라크의 석유를 탐낼 환경이 아니었다.


만약 이라크를 건드릴 경우,

이라크는 국제유가를 뒤흔들 수 있는 사고를 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전 세계 석유의 대부분은 걸프만 주변에서 채굴되며, 채굴된 원유들은 사

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좁은 원유 집하장으로 모여 좁은 페르시아만을

들락거리는 유조선에 옮겨싣게 되는데, 이라크는 이들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적도 있었다.


1980~88년, 이라크는 이란과 영토분쟁을 벌이며,

걸프만을 지나가는 유조선과 해상 유전에 무차별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유조선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빠져나가면서

쿠웨이트의 유전지대와 석유 시추시설들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쿠웨이트의 석유 생산능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다행히 이라크전에서는 미국이 우려했던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중동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고,

사방에서 분쟁이 일어난 탓에 이라크전 이후 국제유가는 계속 상승중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은 국내에 보유한 막대한 양의 알래스카 원전을

미개발 상태로 남겨두고 있으며,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상당부분을

자국과 자국의 1급 동맹국들(캐나다, 사우디, 쿠웨이트, UAE)이 보유하고 있다.

 

실제 전 세계의 원유매장량은 가채 매장량과 오일샌드같은

차세대 원유 수급처까지 합쳐보면 크게 고갈위기에 처해있지 않다. 

 

 


07년 달러 기준으로 환산한 47~08년간 유가 추이.

이란-이라크전 이후의 ‘탱커워’(이란-이라크가 페르시아 만을 지나는

유조선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 기간)의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반면,

이라크전 당시의 유가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2001년, 유가는 전년대비 크게 하락한 상태였으며,

9.11 태러 직후부터 이라크전까지(02~03) 유가는 더더욱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를 치는 것은 단기적으로보나, 장기적으로보나

이득이 되리라 보기 힘들었다. 단기적으로 볼때, 공격을 받은 이라크가

좁은 페르시아 만(사우디-UAE-이라크-쿠웨이트-이란)에 집중된

해상유전-유조선-석유 집하시설을 공격한다면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컸다.(그래프의 이란-이라크전 부분)


 

 

 

 

(2) 달러 경제권 방어를 위해?

 

 

 

이라크는 당시 국제연합의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고,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석유 수출이 많지 않았다.

그런 이라크가 유로화로 대금을 치룬다고 해서 달러 경제권이 흔들릴 일은 없다.

그러므로 달러 경제권을 위협할만한 강력한 시장이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이라크가 석유대금을 유로화로 결제한다고 하더라도

달러 경제권은 별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국제적인 환전절차에 있다.

 

달러로 석유를 결제할 경우 : (석유)수입국의 화폐->달러->산유국의 화폐

유로로 석유를 결제할 경우 : 수입국 화폐->달러->유로->산유국의 화폐

 

  요컨데 수입국이나 산유국이나 대금을 자국 화폐로 정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달러로의 환전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환전과정이

달러 중심으로 결제되기도 하고, 많은 수입국들이 석유대금을 보유한 유로로

결제할 수 있을만큼 외환보유고에 유로를 쌓아두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석유대금 결제를 유로화로 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들을 침략하거나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왜냐면 산유국들의 화폐는 위와 같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석유 대금이 유로로 지불된다 하더라도 일단 유로화를 달러화로 바꾸고, 달러화를

다시 산유국의 화폐로 바꾸는 환전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달러 경제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3)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군산복합체, 그러니까 자국 내 거대 방산기업이 무기를 팔아먹을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전세계 방산업계에서 Top 3라고 할 수 있는 BAE, 록히드 마틴, 보잉 3사의

기업규모는 월마트, 삼성전자, 도요타 등의 거대기업에 견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자료

http://www.defensenews.com/static/features/top100/charts/top100_08.php

  세계 100대 방산 기업 중 상위 5개 사인 록히드, BAE,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롭 그루만의 1년 총 매출액을 다 합쳐야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제시된 통계에서 ‘Revenue from Defense’ 항목이 해당 기업체가

방산분야에서 벌어들이는 실제 판매총액이란걸 염두에 두자.

 

 

또한 이라크에서의 전비지출 구성을 보면 통상 대형 군산복합체가

큰 이익을 보기 힘든 분야, 즉 경상유지비-병사 인건비, 복지비, 물류 운송비,

기존 무기 수리/유지비용-에 집중되어있다.

 

오히려 대형 군산복합체가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최신 스텔스 전투기, 전차, 장갑차, 전투 헬기, 스텔스 전투함 등은

줄줄이 도입계획이 취소되거나 크게 감축되었다.
  

 

 

(4) 중동 세력구도를 재편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경계선에서 대다수 시아파 국민을

소수 수니파가 억누르는 국가였다. 이라크의 이웃인 이란은 극단적인

시아파 원리주의 국가였고, 원리주의를 수출하는데 열심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이를 막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요컨데 이라크는 시아파 원리주의 운동이 수니 이슬람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틀어막고 있던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전 발발 한달 전에

주미대사를 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 더 큰 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6/11/28/AR2006112801277.html )

 

 

실제로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사담 후세인이 무너지자,

이라크엔 시아파들이 들고 일어나 정권을 차지했다. 사우디는 이에 대응해

수니파 무장세력에 끊임없이 지원을 퍼붓고 있단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주요 수니파 국가들과 이스라엘, 터키까지 포함한 반 시아파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견제는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중국이 최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중국은 기본적으로 자국 외에 1급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없는 국가다. 이란이나 파키스탄이 중국과 협력적인 관계지만,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중국을 견제하고 싶었다면 동아시아에 전력을 집중했어야했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중국을 자극하기보단

협력관계를 구축하고자 애썼다. 이는 국방부 부장관이었던

폴 울포위츠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중국은 향후 수십 년 간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나라"

이지만 "냉전시대 옛 소련처럼 중국을 다루는 것은 실수"이며

"(중국은) 말 그대로 그 폭과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견실한 민간 부문"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동유럽 NATO 가입문제, MD문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문제를 두고 몰락한 러시아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다.

 

 

 

 

 

 

 

slide 2. 네오콘들

 

네오콘 :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신 보수주의자들을 일컫는 용어.

힘이 곧 정의라고 믿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산백과 <네오콘>항목-

 

 

앞서말한 이유들이 주된 원인이라 보기 힘들다면

대체 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는가? 바로 네오콘들 때문이었다.

 

  네오콘이란 미국의 신보수주의 운동을 말한다. 이 신보수주의 운동은

1970년대 닉슨 대통령 치하의 '데탕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당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공화당 정부의 장관이면서도

베트남전을 종결시키고, 미중수교를 이끌어내고, 미소간 핵무기 감축협상을

이끌어내는 등의 전향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미국의 힘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며

"중국, 소련 들과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달성하자"고 주장했다.

 

 이러한 행보에 충격을 받은 공화당 내부의 극우보수파들은

역공을 펼쳤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미국은 보편주의적 원칙(민주주의, 자본주의)에 헌신하는 국가이다.
-미국은 이러한 원칙을 널리 전파해야하고,

이 원칙에 반하는 악의 제국(소련)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국제사회의 규제에

얽매이지 말고 강력한 패권을 휘둘러야한다.

 

*자료 - 네오콘 사상가 월포위츠에 대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회고,

제임스 만, <불칸 집단의 패권 형성사>

 

키신저는 분명 강대국들 사이에 안정적인 평형 상태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메테르니히와 그의 목표에 일체감을 느꼈다. 키신저의 대소 데탕트 정책 추구는

이 모델에 기반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복원된 세계』에서 도덕적 관심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키신저는 "도덕적인 주장들은 절대주의의 추구, 뉘앙스의 부정,

역사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월포위츠에게는 도덕적 원칙들이 안정이나 국익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후쿠야마는 "키신저의 잘못은 그가 살고 있는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떤 보편주의적인 원칙에 헌신해 온 나라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라고 월포위츠가 지적했다."고 회상했다.

 

 

월포위츠는 현존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치적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들은 레이건주의자들이 주장한 "대외정책의 도덕성" 조항을 수용했고,

이후 부시 행정부에서 정치적 안정보다 도덕적 가치를 선호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라크 정책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만일 후세인의 타도가 현존하는 중동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해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게 그의 논리였다.

월포위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도덕적 가치라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키신저는 포드 행정부 시절에 대한 회고록에서

우드로 월슨의 시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키신저는 "이들은 대외정책을 선과 악의 투쟁으로 바라보며, 평화로운 질서에

도전하는 악한 적들을 격퇴하는 것을 미국의 소명으로 생각한다.

…윌슨주의자들은 도덕적 합의를 통한 평화를 추구하면서,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는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키신저의 이 말은 사실 포드 행정부 시절부터 부시 행정부까지 지속되고 있는

월포위츠의 생각을 제대로 묘사한 것이었다. 월포위츠는 어느 공화당 인사보다

자신을 키신저와 정반대라고 생각했고, 사상의 영역에서는 그를 적으로 간주했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이 바로 레이건 행정부때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네오콘의 금자탑과도 같았다. 막대한 군비를 투자해서

세계 어디서든 패권을 휘두를 수 있는 군사력을 건설하고, 악의 제국 소련과

한치의 타협도 없이 대립해서, 결국 소련의 붕괴를 이끌어내고 말았다.

 

 

 

slide 3. 아버지와 아들

 

 

레이건의 뒤를 이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정 반대였다.

그 태도는 걸프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자료 - 걸프전에서의 파월 독트린, 콜린 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1) 우리[미국]나 우리[미국]의 동맹국의 중대한 이해가 위태로울 때 투입한다.

(2) 투입하게 될 경우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3) 뚜렷한 정치적, 군사적 목표가 있을 때에만 투입한다

(4) 전쟁이란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목표가 바뀌면 병력 투입에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5) 미국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입한다.

(6) 최후의 방편으로서만 미국 병력을 투입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의 이해가 위태로운 지경인가 물어서

대답이 예라면 들어가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에 머문다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 네오콘들은 위험한 독재국가 이라크를 박살내고

후세인을 잡아 사형에 처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럼에도

아버지 부시는 그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스코우크로포드나

콜린 파월과 같은 정통파 보수주의자와 손을 잡고 네오콘들을 내쫒았다. 

 

 

 

 

* 자료 - 부시 시니어, 스코우크로포트,

왜 우리는 사담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1998년 Time지.

 

우리는 민중 반란이나 쿠데타가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길 기대했지만,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정책지침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나마에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세계에서 침략행위를

다루는 패턴을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오던 중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slide 4. 아버지와 아들 2

 

 

아들 부시는 아버지와는 180도 달랐다.

그는 럼즈펠드, 울포위츠 같이 아버지가 멀리했던 네오콘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고,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그들에게 감투를 나눠주었다.

그들은 아들 부시를 포위하고 자신들의 사상으로 중무장시켰다.

 

 

* '악의 축' 발언의 탄생

 

  이들은 끊임없이 이라크에 집착했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인사들은 걸프전이 종전하자마자

"왜 이라크를 접수하지 않았는가?"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폴 울포위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까지 했다.

 

9.11 테러 전부터 부시 행정부는

비밀리에 이라크 침공작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엔 이들은 반사적으로 이라크를 조준했다.

 

12일 저녁에 비디오 회의 센터를 떠나 상황실에 오니 대통령이 와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듯했다. 그는 우리 중 몇 명을 붙잡고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대통령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사담이 이 짓을 했는지

알아봐주십시오. 어떤 방식이로든 그가 이 일과 연관되었다는 점을

밝히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앞선 회의가 생각났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 이번 공격은 알 카에다의 소행입니다."

"알아요. 알고 있지만 사담이 연관되었는지 밝혀보세요.

한번 찾아보세요. 사소한 단서라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견해를 존중해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동안 알 카에다를 후원하는 국가가 있는지

여러 차례 조사를 했지만 알 카에다는 이라크와 아무런 실질적 연계가

없었습니다. 이라크의 역할은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처럼 미미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이라크와 후세인을 조사해보세요."

대통령은 화난 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리사 고든 해거티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대통령이 나가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
.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 아침,

국방부의 관심은 이미 알 카에다에서 멀어지기시작했다.

CIA는 이번 테러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고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지만,

럼즈펠드의 심복인 폴 울포위츠는 이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 9월 12일 오후가 되자 럼즈펠드 장관은

우리의 대응 조치 범위를 확대해 '이라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 국무 장관은 알 카에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지원세력이 생기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며

콜린 파월과 차관인 리치 아미티지에게 감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논의에서 뭔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알 카에다의 공격을 받고 그 대응으로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응하려고 멕시코를 침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는 강력히 의견을 개진했다.
파월은 고개를 흔들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정말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럼즈펠드 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근사한 폭격 목표가 없고, 더 좋은 목표가 있는 이라크를

폭격해야 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

처음에 나는 럼즈펠드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 결국 정의로운 미국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만한

더 멋있는 목표인 이라크가 지목되었고, 네오콘들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030326000255&subctg1=06&subctg2=02

네오콘 사상가이자 부시행정부에 속해있던 리처드 펄의 인터뷰. 

 

미군은 이번 전쟁이 이라크 국민을 독재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전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이는 단순한 립서비스만은 아니다.) 라던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유엔 안보리는 반신불수가 됐다.

라는 발언에서 네오콘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4-4.  이라키 프리덤, 이라크 침공작전

 

 

 

걸프전을 총 지휘한 것은 미 대통령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와

합참의장 콜린 파월, 미 중부군 사령관 노먼 슈월츠코프입니다.

 

이들은 걸프전을 수행하면서 한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웠는데,

그것이 ‘파월 독트린’이라 불리는 원칙입니다.


  미국은 어떠한 때 해외에 병력을 파병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인

파월 독트린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pp.412-413))

 

미국이나 동맹국의 중대한 이해가 위태로울 때 투입한다.

->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미국의 에너지 안보가 달린 문제이자,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리더쉽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투입하게 될 경우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 슈월츠코프는 파월에게 자신이 가진 병력의 2배를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파월은 한술더떠 유럽과 본토의 병력까지 모두 내어줬습니다.

 

분명한 정치적, 군사적 목표가 있을때만 투입한다.

-> 다국적군의 목표는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철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라크를 점령하는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부시&스코우크로프트, 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Time, 1998년 3월 2일)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경우 투입한다.

-> 쿠웨이트 침공은 분명한 도전이었고, 부시 대통령은 모든 미군을 집중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단시간 내에 이라크를 박살내고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최후의 방편으로만 미국 병력을 투입한다.

-> 이라크는 유엔이 정한 철수 권고를 모두 무시했고,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는 한

절대로 쿠웨이트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원칙에 비추어보면 걸프전(1차 이라크 전)은

“반드시 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라크전(2차 이라크전)은...

 

 

동맹국들 다수가 참전을 거부.

 

 

 

 

 

투입 병력 수.

 

 

 

 

 

 

 

 


 

4-5.  이라크 안정화 작전, 맨땅에 나라 세우기

 

 

 

 

하지만 후세인이 죽게 되자...

 

 

 

 

 


-이라크 전쟁(2003)부터 2008년까지 미군 및 다국적군의

사상자 및 공격받은 지역( http://www.obleek.com/iraq/index.html )

 

-선거로 다수파가 된 시아파 정권, 연합군이 훈련시킨 경찰병력의

인수를 거부, 경찰로 위장한 시아파 민병대에 의한 소수 수니파 살해작전

http://sonnet.egloos.com/2333953

 

 

 

 

 

-수십만의 병력을 주둔시키면서도 실제 경제적 성과는 거의 없음.

오히려 유전개발 사업 등에서는 중국에 밀리기까지.

http://www.voanews.com/korean/news/Iraq-Investment-97840484.html

 

 

 

 

 

 

4-6.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성과

 

slide 1.


  테러와의 전쟁은 분명한 성과를 남겼다.

다년간의 엔듀어링 프리덤 작전 및 국제사회의 대 테러작전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국제적인 테러 네트워크를 거의 붕괴시켰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이후 서방세계를 타깃으로 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조직의 대형 테러사건은 자취를 감췄다.

주된 원인은 알 카에다 네트워크를 총지휘하던 알 카에다 총 사령부가

미국의 끊임없는 공격과 추적으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 카에다의 인력부족도 심각해졌다.

아프간은 물론이고 중동전역에 흩어져있던 알 카에다의 훈련캠프들은

대부분 서방의 공격을 받아 붕괴하고 말았다.

 

이제 알 카에다는 베테랑 전사들에 의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정예 전사들을 테러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테러 교본', '가내 폭탄 제조법'같은 PDF를 보고 무질서한 테러를

저지르는 어중이 떠중이에 의존하고 있다.

 

 

 

 

2011년, 빈라덴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서

미해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결정적인 전기라할 수 있다.

 

 

 

 

알 카에다를 지탱하고 있던 천재적인 전략가이자 카리스마있는

지도자의 상실은 각지의 원리주의 집단을 모아놓은 프랜차이즈

테러사업체인 알 카에다를 크게 약화시켰다.

 

  물론 중동의 상황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미국이 개입한 이라크와 아프간의 상황은 혼란스럽고

여전히 수많은 테러단체가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2011년의 아랍 민주화 운동은 모든 것을 뒤흔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간 알카에다를 비롯한 원리주의 테러단체는 아랍세계에서도

꾸준히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자국의 폭압적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테러 이외의 수단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아랍의 시민들은 테러가 아니라

시위를 통해서도 폭압적인 정권을 타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는 아랍 사회에 기반을 둔 테러리즘의 쇠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