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공간/세계정세

9.11 테러와 이라크전(中) by 엑스트라1

Good Choi 2011. 12. 8. 20:36

 

 

 

 

3-5.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slide 1.


 알 카에다는 아랍 세계에 있어서 대단히 독특한 조직이다.

이전까지의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들은 자기 나라의 세속주의 독재정권

상대로는 여러번 테러를 저질렀지만, 미국을 직접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 이집트의 저명한 원리주의 사상가,

무함마드 압드 알 살람 파라즈(Muhammad Abd al-Salam Faraj)의 팜플렛

 

 가까이에 있는 적(세속정권)과 싸우는 것이 멀리 있는 적(미국)과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지하드를 위한 무슬림의 피는 승리하는

그날까지 흘려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과연 이 승리가 이슬람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불신자 정권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승리가 하느님의 법에서 일탈하고 있는 이 정권의

기반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어야 하는가?

 

이 (독재)정권의 통치자들은 겉으로는 이슬람인 척하면서

일부 무슬림 민족주의자들이 제공한 기회를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지하드의 투쟁은 무슬림들의 지원 아래 무슬림 지도자들의 지휘 하에

수행되어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논쟁이 있을 수 없다.

 

 이슬람 영토에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악한 통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항해 투쟁을 하는 것은 영광스럽거나

유용한 것이 아니고 시간 낭비일 뿐이다. 우리 조국에 하느님의 법을 제정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슬람의 대의를 결집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지하드의 첫 번째 전장은 이러한

불신자 통치자들을 척결하여 완벽한 이슬람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 카에다는 미국을 직접 공격하여 쓰러트려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속주의 독재정권(ex. 이집트)가 무너진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예를 들자면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전두환은 미국의 수족에 불과하므로 미국을 쓰러트리면

자연스럽게 전두환 정권도 무너진다는 주장을 펼친 셈이다.

 

 

 

slide 2.


 오사마 빈 라덴은 천재적인 전략가였고,

마이클 잭슨 이상의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기존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180도 다른 알 카에다의 이념을

그의 카리스마와 행동력으로 수많은 조직들에 전파하는데 성공한다.

 

 그의 특기는 아랍세계 곳곳의 테러 조직들을 알 카에다의 깃발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알 카에다는 일종의 프랜차이즈 조직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테러조직이 알 카에다의 휘하로 들어와 알 카에다란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면,

빈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총사령부는 이들 조직에게 자금, 기술, 인재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테러 계획까지 짜서 건네주었다.

 

 요컨데 빈라덴은 테러업계의 벤처 캐피탈리스트였다.

한 조직에 인재는 있는데 자금이 없다면, 다른 조직에서 자금을 끌어다가

투자를 해준다. 한 조직에 폭파 테러 계획은 있는데, 폭탄 기술자가 없다면

다른 조직의 폭탄 기술자를 소개해준다.

 

 

 이런 식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알 카에다는

순식간에 그 덩치를 불려나갔고, 이전의 테러 조직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일을 벌이게 된다.

 

 

 

 

 

 

 

slide 3.

 

 알 카에다가 9.11 이전에 벌인 국제적인 테러들은 다음과 같다.

 

- 1990년 11월, 미국 뉴욕 고층건물 폭파테러 계획을 짜던 알 카에다 조직원 발각

 

- 1992~3년, 알제리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일으킨 내전을 지원, 15~20만명이 사망.

 

- 1993년 2월, 미국의 세계 무역센터 폭파 테러, 6명 사망, 1000명 부상

 

- 1997년 11월, 이집트 관광지 룩소르에서 서양 관광객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학살 지원, 58명 사망

 

- 1998년 8월, 케냐, 탄자니아 미 대사관 동시 폭파 테러, 각각 212명, 11명 사망.

 

- 2000년 11월, 예멘에서 미 해군 구축함 콜 호(USS Cole)을 상대로 자살보트테러, 17명 사망

 

 

 

slide 4.

 

 알 카에다가 연달아 국제적인 테러들을 벌이자,

그 주모자인 빈라덴도 자연히 수많은 나라로부터 쫒기는 몸이 된다.

 

 1992년, 그는 사우디 왕가를 비판한 죄로 사우디에서 추방당한다.

수단의 독재자 알리 무함마드가 그를 받아들여 그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알 카에다의 훈련시설을 짓고 테러를 계획한다.

 

 1994년, 사우디 정부는 그의 사우디 시민권을 말소하고,

그의 가문에게 재정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수단 정부도 빈라덴을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1996년, 그는 수단을 떠나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이슬람 지도자"라고 극찬했던

아프가스탄 탈레반 정권의 물라 오마르에게 합류한다.

그는 탈레반 정권의 지원을 받아 아프간에 수많은 알 카에다

훈련 캠프를 짓고, 알 카에다 전사를 아프간의 내전에 참전시켰다.
 
 1998년 3월, 그는 독일인 2명을 리비아에서 살해한 죄로

국제경찰(인터폴)의 수배자 명단에 오른다.

 

 1998년 8월, 케냐 미 대사관 폭파테러 직후, 미군은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 캠프에 수십발의 미사일을 발사한다. 11월엔 미 연방법원에서

탈레반을 "미국 국민을 살해하고 재산을 파괴한 죄"로 기소되어 다음해 FBI의

'10대 수배자' 목록에 오른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빈라덴의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한다.

 

 1999~2000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CIA 비밀공작팀을 파견하여

빈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2번의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빈라덴을 잡는데 실패했다.


 

 

 

* 9.11 테러사건(September 11 Attacks)

 

요약


9•11 테러는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부터

오전 10시 30분 사이에 일어난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부속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미 국방성인 펜타곤의 일부가 붕괴된 사건을 말한다.

 

 

시간대별 상황


사건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피해규모


1. 희생자 집계


(1) 뉴욕
 - 세계무역센터(WTC): 실종 4972명, 사망 152명
 - 아메리칸 항공 AA11편 탑승객: 사망 92명(전원 사망)
 - 유나이티드 항공 UA175편 탑승객: 사망 65명(전원 사망)


(2) 워싱턴 D.C.
 - 미국 국방부 청사(펜타곤): 사망 또는 실종 125명
 - 아메리칸 항공 AA77편 탑승객: 사망 64명(전원 사망)


(2) 펜실베니아 주
 - 유나이티드 항공 UA93편 탑승객: 사망 44명

 


2. 경제적 피해


-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
-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
- 각종 경제활동 및 재산피해가 막대하여 화폐가치 환산 및 정확한 집계 불가능

 

테러 용의자


- 납치당한 4대의 항공기에는 3~5명의 납치범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됨
- 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출신의 조종사로 밝혀짐
-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있으며, 그밖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산하 무장조직인 하마스(HAMAS), 이슬람 원리주의 기구인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여타 이슬람 테러조직들도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음

 

사건 이후 동향


- 미국은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을 결정하고,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의 장비를 파견함
- 2001년 10월 9일 미/영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 아프가니스탄 영토 공습과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같은 해 11월 20일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
- 이어 12월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
-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20일만에 완전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 출범
- 2011년 5월 1일 제로니모 작전의 일환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후 수장시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 김대중 정권은 국가 안보 회의를 소집,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림
- 지상파 방송 3사에서는 뉴스 특보가 철야로 방송
- 국제전화 불통 사태, 주요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 마비 등 전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킴
- MBC 특집드라마 ‘그라운드 제로’가 2007년 방송됨

 

 

 


 

 

 

 

 


 

 

 

 

* 옮긴이 주 : 충돌로 인한 화재가 빌딩내부에 존재하는 화재하중(일반 집기, 가구 등등)에

옮겨지면 빌딩 특유의 사무실 구조에서 플래쉬오버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플래쉬오버는 보통 800~900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며, 목조건물이면 온도는 더 높이 올라갑니다.

이 정도 온도면 콘크리트 양생시 미세하게 남아있던 물방울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팽창하며

콘크리트에 균열이 가게 만듭니다. 철근, 철골만이 아닌 콘크리트의 강도도 크게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항공기 외부 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화재하중은 존재합니다.

 

 

 

 

 

 

 

 

 

4. 테러와의 전쟁

 

 

4-1.  엔듀어링 프리덤-A, 아프간 침공작전
http://en.wikipedia.org/wiki/Operation_Enduring_Freedom
엔듀어링 프리덤 위키 항목, 엔듀어링 프리덤-A(아프간 전쟁) 뿐

아니라 글로벌 엔듀어링 프리덤에 관한 설명도 부속

 

 

4-2.  엔듀어링 프리덤, 테러와의 전쟁

 

* 자료 - Target America 중 Vincent Cannistraro CIA 대테러작전

실장과의 인터뷰, PBS Frontline, 2001년 9월 하순

지난 20여년간 테러리스트들이 배운 것은 … 그들이 우리를 충분히

혼내준다면 우리는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그들이 저지른 실수는 뉴욕과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했다는 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도망칠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우리 집입니다.

그들은 본토를 공격해버렸습니다

 

 

옮긴이 주 :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9.11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테러를 저질렀기에 미국은 수없이 잡으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법과 국제법을 지키느라, 또 다른 나라들이 대놓고 알카에다나

빈 라덴을 숨겨줘도 내정간섭은 할 수 없기에 눈 앞에 두고도 못잡은 사례들이

아래 링크에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

 

미국 대 테러 전략의 변화(9.11 이전과 이후) - http://sonnet.egloos.com/4572971

 

 

 

 

 

 

9.11 테러가 일어난지 이틀이 지난 9월 13일,

부시 대통령은 테러에 대한 군사적인 보복을 명령했습니다.

반미국가와 테러 조직들도 미국의 분노 앞에 일제히 9.11은 자기들의 짓이 아니며,

테러의 주동자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미 미국 정보기관 CIA도 알 카에다가 아닌 다른 테러단체는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9월 16일,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에게 그를 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국경을 봉쇄하고 전쟁준비를 하는 것으로 대답합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결단이 내려지자마자 미군 특수부대와 CIA 공작부대는 아프간에 투입되어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던 반란군들과 접촉하여

미국측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9월 19일, 미국은 막강한 항공모함과 미 공군을 인도양으로 파견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여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과 중동 5개국이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을 결성합니다.

 

10월 17일, 전광석화처럼 준비를 끝마친 미국은 드디어 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을 퍼부으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작을 알립니다.

 

작전명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

앞으로 10년도 넘게 계속되는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관심을 두고 있던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프간은 온통 험준한 산맥이라 미국이 걸프전에서 사용했던

최신식 탱크와 장갑차들은 무용지물에 불과했습니다.

 

즉각적인 복수를 소리 높여 외치는 미국 국민들의 앞에서,

저런 중장비를 몇 달에 걸쳐 아프간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때문에 아프간 전쟁은 아프간에 대해 잘 아는 소수의 CIA 특수부대들이

현지의 반란세력인 북부동맹군을 미국의 막강한 공군력으로 지원하면서 치르는

이상한 전쟁이 되었습니다.

 

명령이 CIA 특수부대 – 미 육군 중부군 – 정치권으로

3단계의 서로 다른 조직 사이에서 오가다 보니, 정작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은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프간은 대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CIA 특수부대들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부터 

북부동맹군과 접촉하여 탈레반을 상대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충분한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단숨에 탈레반을 격파할 수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작전의 총지휘관인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은

신중히 움직여야 한단 입장이었습니다. 아프간은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는 국가였고,

빠른 일처리를 위해 특정한 부족, 특정한 단체만 지원해주게 되면 다른 부족들이

반발하게 되어 전쟁이 끝난 뒤 뒷수습을 못할 가능성이 너무 컸습니다.

때문에 프랭크스 장군은 아프간의 여러 민족간의 균형을 생각하며

복잡한 협상을 계속 해나가야 했습니다.

 

문제는 현장의 특수부대들과 후방의 지휘관, 그리고 대통령이

서로 충분히 소통하며 이러한 속사정을 서로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단 점이었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 “안보 장관들 사이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는데,

아프간에서 우리 군대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콜린 파월 : “최악의 경우엔 겨울동안 북부동맹군을 훈련시켜

장기간의 전쟁에 대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도날드 럼스펠드 : “CIA놈들이 모든걸 망쳤어! 내 꿈을 훔쳐갔다고!”

 

딕 체니 : “내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어요.
만약 북부 동맹군이 움직이지 않으면 미군 5만명을 투입할 수도 있습니다.”

 

조지 부시 : “우리가 그 부족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시킨건 아닌가?”

 

 

 

11월 초가 되자, 전쟁이 시작된지 한달이 지나도록 별 진전이 없는 전황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그의 장관들은 불평과 불안감을 토해냅니다.

 

국민들은 분노에 차 어서 빨리 빈라덴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도 끊임없이 군 지휘관들을 압박했지만 지난 한달 동안 미군 특수부대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군이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통령 딕 체니는 전쟁이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만약의 경우 5만 명에 달하는 미군을 직접 투입하는 작전을 구상합니다.

그러자 국방장관 럼즈펠드는 “CIA놈들이 모든걸 망쳤어! 내 꿈을 훔쳐갔다고!”라고

울부짖었습니다. 5만명의 미군을 동원해야 하는 럼즈펠드의 꿈은 다음 파트에서

다루게 될 주제입니다.

 

하지만 11월 7일, 드디어 북부동맹군이 움직이자마자

탈레반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됩니다. 갑자기 날아든 기대치 않은 좋은 소식에

대통령과 장관들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이들은 대체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전황이 지지부진하다가 갑자기 반전이 되었는지 전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아프간은 이들의 관심에서 전혀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장관들의 눈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이미 그들의 “진정한 꿈”을 향해 돌아간 후였습니다. 

 

 

 

 

11월 6일, 미군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군은 북부의 요충지 쿤두즈에서 탈레반을 몰아냅니다.


11월 10일, 북부동맹군은 북부의 주요도시인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합니다.

이로서 우즈베키스탄에 집결한 미국 육군과 공군이 아프간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월 20일, 북부동맹군과 미군, 그리고 남부 파슈툰족 저항군은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입성합니다.

 

12월 16일, 연합군은 탈레반의 본거지인 칸다하르와 알 카에다의 본거지

토라보라를 공격하여 이들을 몰아냅니다. 하지만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와

알 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을 체포하는데 실패하고, 이들은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로

달아나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12월 7일, 미국은 아프간 대부분 지역에서 탈레반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뒀습니다.

단지 수백명의 미군 특수부대가 이룬 기적같은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아프간 전쟁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나라를 무너트리는 것보다 더욱 고되고 힘든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slide 4. 계속되는 테러들

 

 

 

 

- 2005년 7월 7일 -- 런던 지하철에 대한 다중폭탄공격 사망 56, 부상 650여명

 

- 2004년 3월 11일 -- 마드리드 통근열차에 대한 다중폭탄공격 사망 200, 부상 1800여명

 

- 2003년 11월 15일 -- 이스탄불에서의 다중 폭탄공격. 27명 사망

 

- 2003년 8월 5일 -- 자카르타 메리어트 호텔 폭탄 공격 사망 13, 부상 100여명